왜 그랬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의아하기만 하지만, 그때 대학 2학년 때 시 쓰기에 가장 열광하던 그때 시 쓰기를 포기했더랬습니다. 내 길이 아닌 것만 같았습니다. 그 후로 너무 오랫동안 산문의 세계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다시 조심스럽게 시 쓰기를 시작하는데, 자의식이 없을 수 없습니다. 비밀스럽게, 낮은 목소리로, 낮은 숨결로 이곳 한켠에 써 둘 생각입니다. 그러니 이 글은 되려 보기 어렵겠군요. 다행히 이곳을 찾은 여러분을 빼고는 말이지요.

2008년 5월 3일 토요일

2008년 새해 첫 해맞이

밤을 새는 건
밤이 밤이기 때문이지
밤을 낮처럼 사는 사람에게는
새벽 해 뜨는 걸 보기가 저녁 해 지는 걸
보기보다 더 쉬운 걸
하지만
오늘밤은 너무너무 춥고
낮밤을 거꾸로 살든
세상을 거꾸로 살든
꼼짝도 하기 싫어
네 시라고 시계가 말을 건네도
못 들은 척하다가
삼십 분이 더 지났어
하고 화를 내는 통에 번쩍 일어나
아빠의 이미지가 힘들어서 보람 있는 도전이라고
대답을 하고선
아이들을 흔들어
덜 깬 잠을 내쫓았지. 힝
더 잘래 하며 감긴 눈
애써 뜨려 하지 않는 두 딸에게
옷을 입히고
집 옥상으로 올라 갔어
옥상은 우리 집이 아니라서
맘대로 올라갈 수도 없는 곳.
한해 시작할 때에만 간신히
자리를 허락 받는 곳
이제 간신히 올라갔는데 글쎄
어이쿠
춥다
정말 춥지?
하지만
조금만 기다려 봐. 조금만
기다려 봐. 조금만 조금만 기다리면
해가
뜰 거야. 뜰 거야
한 시간이나 더 아이들을 붙잡아 두곤
간신히 해가 떴네
해 뜨는 걸 보는 건
어렵지도 않지만
정말 해 뜨는 걸 봤네
저게 새해
저 너머 하남시 사람들은 먼저 봤을 거구
그 너머 홍천 사람들도
평창 사람들도
강릉 사람들도 다 먼저 봤을
새해를
새삼스레 맞이하고
잤지.
새해 첫 아침을

[출처] 2008년 새해 첫 해맞이 작성자 미운오리 2008. 01. 01.
(네이버 블로그에서 옮겨 왔다. 말하자면 이사 왔다는 거야.)

나를 옹호하는 방법

저마다 자신이 속한 세대에 대한 그럴 듯한 이유를 붙이길 좋아한다.
비록 무임승차를 한 셈이라도 6.25세대이니, 6.3세대이니, 유신세대니, 80세대이니, 386세대이니 하는 식의 세대 범주 속에서 자신을 정당화하는 걸 용케도 잘 배운다.
그 세대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여전히 유지되지도 않을텐데, 집착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현재나 미래에서 못 찾고 과거에서 찾으려 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도 세대 범주의 유용성이 여전히 남아 있는 한, 사람들은 이름 붙이기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나도 그렇다.

대학생 때는 아직 386세대니 뭐 그런 명칭도 없었거니와
민주화세대 이런 이름이 가당치도 않았으므로
무슨 정체성에 대한 혼동이 좀 있기는 했는데
그때 내게 '6.8세대'는 6.3세대나 80세대보다 내게 더 매혹적이었던 것 같다.

내가 속한 세대는 어떤 세대였을까....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을 읽으면서 생각하기로는
무슨 이유가 좀 있어야 했다.

그냥 웃으라고 쓰는 거다.
베이비붐 세대가 당시로는 가장 많이 회자되는 말이었는데
나는 거기에 이유를 붙였다.

4.19도 실패로 돌아가고
군사 쿠데타에 이어 군사정부가 들어서던 그때
겨울철
우리 부모 세대는 무얼 했을까.
추운 계절, 추운 밤, 추운 시대에
연탄불로 방안 덥히고
두터운 이불 속에서
시대를 탓하며
그래도 미래를 희망하며
새로운 세대를 한참 만들고 계셨겠지.

그 좌절과 희망과 염원들이 증폭된 것이
베이비 붐이 아니었느냐는.....
그 현상이 달리 일어난 게 아니었다는

풋풋.....

[출처] 나를 옹호하는 방법 작성자 미운오리 2007. 03. 12
(네이버 블로그에서 옮겨 왔다. 이사 왔다는 말이지.)

반가워

그냥 바쁘게 살다가 사진 한 장 생기면 올리고 그러면서 또 살고 ..... 그러는 중이다.
사진이 자주 생기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딸 아이의 사진이 나은 편이다. 둘째 딸이다.

[출처] Hi! 작성자 미운오리 2007.03.12
(네이버 블로그에서 옮겨 왔다. 이사 왔다는 뜻이지.)

교수법에 대하여 (1)

우리들 각각의 기억 속에는 학창 시절의 수업을 인상 깊게 만들었던 몇몇 선생님들의 이미지가 남아 있다. 개인적인 얘기가 되겠으나, 내게도 그런 인상의 몇 분 선생님이 계셨다. 한 분은 중학교 1학년 때 사회과 선생님이셨는데 손바닥만한 대나무 쪽에 작은 나무토막을 덧붙여 꼭 칫솔처럼 만들어 두고 수업 시간 중 끊임없이 각성과 자각이 일어나도록 자극을 주셨더랬다. 수업이 끝날 때쯤에는 여러 명의 손바닥이 얼얼한 상태가 되어 있었지.


이분 얘기하기가 쉽지 않으니, 잠깐 곁길로 가야만 한다. 나 혼자서 연애를 했던 이 분은 키도 작고 얼굴도 미인형은 아니었는데, 아마도 교사로서 여겨졌던-데다가 내 사춘기의 여 선생님이었던- 첫 선생님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 분이 여름 지나고 결혼을 하셨는데, 별 아쉬움이나 슬픔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3000원이란 큰돈을 학교 앞 문방구에 안겨 주고 구입했던(명백히 바가지 썼던 거다. - -;; .....) 앨범에 일주일 넘도록 사진 대신 시들을 끼워 넣는 작업을 해서 헌정 시집을 만들어 드렸던 거다. 내 마누라에게도 해 보지 못한 청춘이었던 게지. 그때가..... 거기 들어간 시들은 모두 내가 직접 쓴 것들이었는데, 찾을 수도 없다. ㅠ ㅠ


다른 한 분은 고등학교 2학년 때 국사 과목 선생님이셨다. 그 분은 교과서를 통째로 외우셨는지 수업 시간 중 삽화든, 본문 구절이든 몇 쪽 몇째 줄을 펴 봐라 하시면서 종횡으로 교과서를 넘나드셨다. 하필 교훈이 ‘하면 된다, 하자, 할 수 있다’ 이런 것이었던 까닭인지는 모르지만, 그 분은 우리도 그렇게 교과서를 암기해 두길 권하셨다. 그때는 사전이란 으레 한 장씩 떼어 씹어 먹는 걸로 이해하던 시절이었다.

내 기억력은 고약하기로 유명한 편인데, 대개 사람 관계에서 필수적인 것들은 제 기능을 못하기 때문이다. 이름 못 외워 전화 번호도 몇 번 듣는다고 새겨지는 게 아니다. 그러다 보니, 그 시절 고생했을 것은 불문가지.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때는 입시 공부에는 그닥 관심이 없었기에 생각보다 고생은 크지 않았다. 어쩄든 이분에게 배운 게 있기에 뒤늦은 공부에서 뒷심 발휘가 가능했다.
대학에 와서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이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 학기 내내 강의실에는 빈손으로 들어가니-오해는 마시라, 강의안은 미리 가상강의실에 올려두고 프레젠테이션도 한다. 내가 교재나 강의안을 보고 수업을 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학생들은 비상한 기억력에 찬탄한다. 이럴 때면 나는 국사 선생님을 떠올린다. 그분도 뛰어난 기억력 덕분에 교과서를 통째로 외우신 것은 아닐테지. 다만 그렇게 외운 모습으로 보이기까지 교과서의 종과 횡을 엮어 연상과 추론이 유연(柔軟)하고 유연(類緣)한 네러티브를 만들었을 것이다. 왜?
보이기는 잘 외운 것 같지만, 나로서는 그렇게 하지 않고는 강의를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체벌과 강설식 수업에 관해 드는 생각이 있길래 적어 보았다.
(계속)


[출처] 교수법에 대하여 작성자 미운오리
(네이버 블로그에서 옮겨 왔다. 이사 왔다는 뜻이지.)

그저 남에겐 멋진 장면일 뿐이야



2월 7일 노량진 수산시장에 다녀왔다.
출사 개념으로 나간 것이었으나
보는 눈은 대게 이상은 아니었던 듯 싶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옮겨 왔다. 이사 왔다는 뜻이지.)

이 아이에게는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나는 그때 무엇을 했나.


(네이버 블로그에서 옮겨 왔다. 이사 왔다는 뜻이다.)

첫 글 쓰다

네이버 블로그의 레이아웃이 쉽게 만들어진다고 하길래
일단 그냥 만들어 봤다.
전세계 2억 개의 블로그 중에서
계속 로그되고 있는 것이 1억 개라는,
그러니까 1억 개는 흐지부지 죽어버렸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내가 이것에 집착하게 될까
그렇지 않아도 계속 쓸 일이 생길까
생각하면서
문득 김수영의 '눈'을 생각하면서
일단 그냥 만들어 봤다.

여기에는 시만 써야겠다.

[출처] 첫 글 쓰다 작성자 미운오리 2007. 01. 04
(네이버 블로그에서 옮겨 왔다. 이사 왔다는 뜻이지.)